'2011/남기고 싶은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7건
- 2011.10.28 [뿌리깊은 나무] 아들들의 뿌리찾기
- 2011.09.24 비현실적인 인물들은 어떻게 현실을 살아갈 것인가.
- 2011.08.11 그 애 1
- 2011.04.12 오감체험전
- 2011.04.12 쟝자크샹페 특별전
극의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뿌리깊은 나무는 오랜만에 만나보는 웰메이드 사극이다. 정말 잘 쓴 글을 보면 저절로 리뷰가 떠오르는데 이 드라마가 현재 내게 그러하다. 인물 설정, 캐릭터들간의 대립각, 이야기의 인과관계 등 모든 게 아주 촘촘하게 잘 짜여져 있다.
기본적으로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뿌리깊은 나무' 를 만들기 위한 각 등장인물들의 치열한 싸움에 대해 다룬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그들이 뿌리가 될 것인지, 아니면 가지가 될 것인지에 대해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 타인의 선택에 대해 반발하며 대립각을 세운다.
세종은 스스로 뿌리가 되기를 선택하는 인물이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이미 만들어놓은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아버지가 심어놓은 뿌리에서 자라난 가지가 되길 강하게 부인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자신에게서 뻗어나갈 세계를 꿈꾼다. 아버지란 나무에서 뻗어나온 한 가지로 있을 때 스스로 내내 불행했고 자신을 살리기 위해 다른 가지가 다 쳐내지는 것을 보며 스스로의 존재의 의미를 깊이 고찰했던 이 사려깊은 인물은 상생을 위해 스스로가 뿌리가 되길 꿈꾼다. 자신에게서 뻗어나간 가지가 모두 다 잘 살기를 바라며 자신이 그 가지들에게 양분을 주는 뿌리가 되기를, 누구 하나 쳐내거나 누구 하나 죽이지 않고 모두 살리는 인물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이도와 정 반대지점에 있는 캐릭터가 바로 채윤이다. 채윤은 아버지가 세상에 전부였던 인물이다. 이 지점에서 이도와 채윤의 구도가 흥미를 가진다. 이도는 세상을 다스리는 강력한 아버지를 두었으나 그 아버지로 인해 불행했고, 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만을 꿈꾼다. 채윤의 아버지는 세상 모두가 반푼이라고 하는 인물이었으나 채윤은 그 아버지의 존재로 인해 행복했고, 아버지의 세상 속에서 살기를 바란 인물이다. 그러나 채윤의 그런 바람은 (채윤이 생각하기로는) 이도로 인해 부숴진다. 자신의 세상을 유지하고자 아무 죄책감 없이 타인의 세상을 부수는 것은 이방원의 특기였으나 정치적으로 무지한 채윤은 그것이 이도가 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이도를 증오한다.
모두를 살리고 싶은 이도는 아버지의 그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이도는 아버지의 그늘에 있고 싶으나 그 소망이 절망된 채윤이 자신을 암살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가. 자신의 아버지가 한 일인데 자신의 일이 되었다. 게다가 채윤은 자신과 달리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아버지로 인해 괴로운 이도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채윤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아버지의 세상을 버리고 싶은 이도는 아버지의 세상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오해를 받고, 아버지의 세상을 그리워하는 아들에게 목숨을 내줘야 하는 처지에 빠진다.
뿌리 깊은 나무는 이렇듯 세상을 정 반대로 지각하고 있는 두 인물로 초기 갈등을 유발한다. 그리고 중반 이후로 이 드라마는 여기에 '밀본' 의 '정기준' 이라는 인물을 투입하면서 긴장을 한층 고조시킨다.
단순히 이도-채윤의 갈등이라면 이도가 채윤에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한글 창제를 하기만 하면 끝날 문제다. 이것은 너무나 명명백백한 오해이니 더 길게 끌고갈 만한 힘이 없다. 하지만 여기에 밀본이 개입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밀본은 표면적으로는 채윤과 같이 아버지의 세계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인물인 정기준이 이도에 대해 대립각을 세운 이야기이다. 정기준의 아버지는 이방원에 대립각을 세우다가 축출 당했다. 정기준은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며 이도가 만드는 세계를 위협하다. 여기에 이중적인 오해가 한 번 더 발생한다. 정기준의 세상과 이도의 세상은 동일했었다. 그래서 이도가 만들 세상엔 정기준이 필요했고, 그래서 이도는 정기준을 살리려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이도의 세상은 변화한 반명 정기준의 세상은 변화하지 못했다. 이젠 정기준의 세상이 더 이방원에 가까워졌다. 그들은 이도의 변화를 이해하지도 수용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들의 세상만을 옳다고 우길 뿐이다. 그것은 이도의 방식이 아니다. 이방원의 방식이다.
이도는 정기준이 이방원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만든 세상이 다시 아버지에 의해 위협 받는다. 그것도 자신이 원하는 인물에 의해서 말이다. 이제 이도는 채윤과 오해를 풀 수 없다. 채윤에게 세상을 돌려주고 싶으나 그렇게 된다면 다시 밀본에 의해 채윤은 상처 받게 될 것이다.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채윤의 앞에 나설 수도 그게 오해라고 말해줄 수도 없다.
이도는 기득권이되 자신의 권리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밀본은 단지 왕의 기득권을 신하와만 나누길 바란다. 채윤은 기득권을 나누고 싶지 않은 기득권들에 의해 아버지를 잃는다. 이도의 방식은 채윤과 맞으나 채윤은 이도를 오해하고 있다. 밀본은 겉으로는 채윤과 목표가 같아 보이나 실상을 파고들면 채윤의 가치와 밀본의 가치는 전혀 다르다. 채윤은 겉으로는 아버지를 옹호하는 밀본측과 닿아 있으나 속내는 모두를 위한 세상을 꿈꾸는 이도와 닮아 있다.
이 셋의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이도 뿐이다. 그래서 이도는 여전히 자신을 죽이고 싶다는 채윤에게 그 어떤 이야기도 건넬 수 없다. 다만 채윤이 자신의 길을 열심히 가고, 자신 역시 자신의 길을 열심히 간다면 채윤의 길 끝과 자신의 길 끝이 만나리라, 믿을 뿐이다. 그게 이도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이다.
이제 이도는 모두에게 증명해야 한다. 자신의 방식이 옳다는 것을, 아버지를 부수면서까지 세우고 싶은 자신의 '뿌리깊은' 나라가 정말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줘야 한다. 과연 그게 정말로 옳은가. 스스로에게 생겨나는 의문을 누구와 의논도 하지 못하는 이도는 그것을 혼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이 얼마나 힘든 자리인가.
뿌리깊은 나무는 아버지들의 세계를 둘러싼 아들들의 싸움이다. 아버지의 세계를 어떻게 이어받을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아버지들의 세계를 이해할 것이며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아들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해 나간다. 과연 어떤 방식이 옳은지, 그들의 충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나는 소망한다. 새로운 세상을 굼구는 이도의 세상이 옳기를, 우리 모두를 설득시킬 수 있기를.
조만간 대선을 치룰 우리에게 이 드라마는 어쩌면 훌륭한 해법을 제시해줄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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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절반가까이 온 일지매를 본 현재까지의 느낌은 지독한 비극의 주인공과 신화적인 영웅의 대결이라는 것이다. 현재 비극의 주인공은 비극에서 벗어나려 애를 쓸 수록 점점 늪으로 빠지고 있는 형상이고, 영웅은 자신만의 리그에 갇혀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과연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고 성장할 수 있을까. 또한 이 드라마는 팩션이라는 한계를 과연 얼마만큼 극복할까.
오이디푸스와 꼭 닮은 시후
초반에 일지매를 관심있게 지켜보기 시작한 것은 분명 이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연 순간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간 캐릭터는 '시후' 이다. 일지매에 비해서 분량은 적은 편이지만 작가가 꽤 공을 들여서 이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시후를 통해서 가장 비극적이라 일컬어지는 오이디푸스를 재현하고 있다.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할수록 운명의 덫에 걸리는 오이디푸스처럼 시후의 인생이 그러하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일 자식이라는 신탁에 의해 버려지고, 시후는 종년이 가진 아이라고 어머니와 함께 버려진다. 의붓 부모 밑에서 잘 자란 오이디푸스는 청년시절 자신의 신탁을 듣게 되고, 자신이 친 아버지라 믿는 의붓 아버지를 죽이지 않기 위해 의붓 부모 곁을 난다. 하지만 여행의 과정에서 그는 신탁대로 자신의 친 아버지를 죽이게 된다. 의붓 아버지를 친 아버지라 믿고 자란 시후 역시, 의붓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친 아버지의 죽음에 일조한다. 친 어머니와 부부의 연을 맺음으로써 치명적인 죄를 짓는 오이디푸스처럼 시후 또한 누이를 고변하여 누이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게 되고, 후에 이것은 시후를 가장 정서적으로 옥죌 것이 분명해 보인다.
오이디푸스가 '신탁' 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쓸수록 더욱 더 그 운명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결국 가장 비극적인 주인공이 된 것 처럼, 시후 역시 '신분적 한계' 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쓸수록 그는 점점 비극을 향해 치닫는다. 앞으로 그는 자신의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지매를 잡는데 혈안이 될 것이고, 결국 그것은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게 될 것이다. 상대에게 창을 내밀면 내밀수록 더 깊숙하게 자신에게 창이 꽂히는 상황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오이디푸스처럼 눈을 찌를지, 아니면 그러한 비극을 극복해내고 일지매와는 또 다른 영웅으로 탄생할지, 그의 선택이 기대된다.
일지매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
일지매는 전형적인 영웅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그는 왕족으로 태어났고(고귀한 자제), 영특하다.(비범한 능력) 어린시절 역적의 자식으로 죽을 위험에 처하지만(위기1) 도망쳐서 용이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위험에서 벗어난다.(위기 극복)
앞으로 그가 본격적인 일지매가 된 뒤 다시 위험이 찾아올 것이고(위기2), 그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한 뒤 그는 자신이 찾고자 했던 것을 찾고 승리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절반 가까이 이야기가 진행되었으나 일지매에게서 영웅의 구조 외에 다른 부분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일지매가 가진 태생적 한계이다. 홍길동처럼 얼자로 태어났다면 자신의 처지에 깊이있는 성찰을 하고, 사회 개혁에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지매는 왕족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은 잃어버린 자신의 위치와 역적으로 몰린 아버지의 명예이다. 주몽신화처럼, 애초에 고귀한 신분이었던 사람이 일시적으로 잃어버린 자신의 신분을 찾는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즉, 서민과 깊이 공감하기 보다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찾는데 더 주목하게 될 것이고, 그 잃어버린 것만 되찾게 된다면 그것으로 사건은 모두 해결된다. 홍길동처럼 새로운 나라를 창조하거나, 다른 서민층에서 일어난 의적들이 그러한 것 처럼 체제 전복을 굳이 꿈꿀 필요가 없는 것이 일지매이다. 일지매의 아버지 또한 권력 싸움의 희생자이지, 그가 백성들을 위해 행동하다가 죽은 게 아니므로 일지매가 찾는 것 또한 백성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일지매의 싸움은 양반들끼리의 싸움, 즉 그들만의 리그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왕과 양반들의 권력 다툼에 따라서 일지매의 향방이 결정된다.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드물지만) 만약에 왕이 자신의 과거를 지극히 반성하고, 근처의 간신배를 숙청하고 겸이 집안을 다시 원위치 시켜준다면 일지매의 이야기는 끝난다. 이것이 바로, 손에 가진 것을 놓친 기득권적 영웅의 한계이다. 애초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되찾는 이야기이기에 결국 가진 자들의 싸움에 불과하다.
일지매는 8회에서 '내 일 외엔 관심없다' 라고 말한다. 이 대사가 바로 현재의 일지매를 나타낸다. 남은 회 동안 일지매가 풀어야 할 숙제는 어떻게 하면 '그들만의 리그' 에 모든 민중을 참여시키냐의 문제이다. 일지매가 도적이 된 까닭은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해명하기 위한 것이지 홍길동처럼 민중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기에서 시작한 일이 과연 민중을 향할 수 있을까? 수 많은 민중들을 모두 일지매가 품을 수 있을까?
일지매가 진정한 민중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민중들의 편에 서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현재 일지매 본인에게 주어진 자신의 일이 너무 커 보인다. 과연 일지매는 이 큰 자신의 사건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민중들의 편에 서는 '의적' 이 될 수 있을지 앞으로 진행될 일지매의 성장이 기대된다.
동화적인 상상력과 역사적 현실 사이
일지매라는 인물은 분명 비현실적이다. 그런데 그가 사는 곳은 분명 엄연히 존재했던 역사적 현실 한 가운데이다. 드라마 '일지매' 는 역사적 현실 한 가운데 비현실적인 일지매를 둬 팩션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몰입을 극대화 시켰다. 초반에는 이 설정이 일지매라는 비현실적이고 동화적인 영웅에 현실성을 주입하는 데 큰 도움을 줬으며, 이야기의 얼개를 짜임새 있게 했다. 하지만 일지매가 성장하고, 점점 영웅이 되어갈 수록 이 설정은 일지매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꽉 짜여진 현실 속에 너무나 비현실적인 영웅이 들어갔다. 그 영웅은 성장하는데 역사적 현실은 그대로이다. 그렇다면 그 영웅은 '아기장수 설화' 처럼 날개가 잘려 죽음에 이르진 않을까? 과연 제작진은 자신들이 만든 영웅을 얼마나 성장시킬 것이며, 짜여진 현실 속에서 얼마만큼의 일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기껏해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힌 뒤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세력을 되찾아 기득권 안에 편입하는 것으로 이 이야기가 정리되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오랜만에 만난 영웅 또한 제 한 몸 잘 살기 위해 또 다시 백성들의 희망을 잠시 농락한 그렇고 그런 놈에 불과하지 않은가.
팩션은 영웅을 이야기 하기엔 적절한 구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이 팩션을 선택했다면 분명 그러한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이야기 하고 싶었던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제작진이 말하고 싶었던 것이 드라마에서 잘 표현되어 극이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기를, 두 캐릭터가 훌륭하게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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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줄도 모르고 있었던 일지매 리뷰인데 뒤늦게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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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딱지처럼 따닥따닥 붙어있는 동네에서 자랐다.
그 동네에선 누구나 그렇듯 그 애와 나도 가난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내 아버지는 번번히 월급이 밀리는
시원찮은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그 애의 아버지는 한 쪽 안구에 개눈을 박아 넣고
지하철에서 구걸을 했다.
내 어머니는 방 한가운데 산처럼 쌓아놓은
개구리인형에 눈을 박았다.
그 애의 어머니는 청계천 골목에서 커피도 팔고
박카스도 팔고 이따금 곱창집 뒷방에서 몸도 팔았다.
우리집은 네 가족이 방두 개짜리 전세금에 쩔쩔맸고,
그 애는 화장실 옆에 천막을 치고 아궁이를 걸어
간이부엌을 만든 하코방에서 살았다.
나는 어린이날 탕수육을 못 먹고 자장면만 먹는다고 울었고,
그 애는 엄마가 외박하는 밤이면 아버지의 허리띠를 피해서
맨발로 포도를 다다다닥 달렸다.
말하자면 그렇다.
우리집은 가난했고, 그 애는 불행했다.
가난한 동네는 국민학교도 작았다.
우리는 4학년때 처음 한 반이 되었다.
우연히 그 애 집을 지나가다가 길가로 훤히 드러나는
아궁이에다 라면을 끓이는 그 애를 보았다.
그애가 입은 늘어난 러닝셔츠엔 김치국물이 묻어 있었고
얼굴엔 김치국물 같은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눈싸움인지 서로를 노려보다가 내가 먼저 말했다.
니네 부엌 뽑기만들기에 최고다.
나는 집에서 국자와 설탕을 훔쳐왔고,
국자바닥을 까맣게 태우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사정이 좀 풀려서 우리집은 서울 반대편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친척이 소개시켜준 회사에 나갔다.
월급은 밀리지 않았고 어머니는 부업을 그만두었다.
나는 가끔 그애에게 편지를 썼다.
크리스마스에는 일 년 동안 쓴 딱딱한 커버의 일기장을
그 애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 애는 얇은 공책을 하나 보냈다.
일기는 몇 장 되지 않았다.
3월4일 개학했다. 선생님한테 맞았다.
6월1일 딸기를 먹었다.
9월3일 누나가 아파서 아버지가 화냈다.
11월4일 생일이다.
그 애는 딸기를 먹으면 일기를 썼다.
딸기를 먹는 것이 일기를 쓸만한 일이었다.
우리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 애 아버지는 그 애 누나가 보는 앞에서 분신자살을 했다.
나는 그 얘기를 풍문으로 들었다.
그 애는 이따금 캄캄한 밤이면 아무 연립주택이나
문 열린 옥상에 올라가 스티로플에 키우는 고추며
토마토를 따 버린다고 편지를 썼다. 이제 담배를 배웠다고 했다.
나는 새로 들어간 미술부며 롯데리아에서
처음 한 미팅 따위에 대해 썼다.
한 번 보자, 만날 얘기했지만 한 번도 서로 전화는 하지 않았다.
어느날 그 애의 편지가 그쳤고, 나는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고3 생일에 전화가 왔다. 우리는 피맛골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생일 선물이라며 신라면 한 박스를 어깨에 메고 온 그 애는
왼쪽 다리를 절뚝거렸다. 오토바이사고라고 했다.
라면은 구멍가게 앞에 쌓인 것을 그냥 들고 날랐다고 했다.
강변역 앞에서 삐끼한다고 했다. 놀러 오면 서비스 기차게 해줄께.
얼큰하게 취해서 그 애가 말했다. 아냐. 오지마.
우울한 일이 있으면 나는 그 애가 준 신라면을 하나씩 끓여먹었다.
파도 계란도 안 넣고. 뻘겋게 취한 그 애의 얼굴 같은 라면국물을.
나는 미대를 졸업했고 회사원이 되었다.
어느날 그 애가 미니홈피로 찾아왔다.
공익으로 지하철에서 자살한 사람의 갈린 살점을 대야에
쓸어담으면서 2년을 보냈다고 했다. 강원도 어디의 도살장에서
소를 잡으면서 또 2년을 보냈다고 했다.
하루에 몇백마리의 소머리에 징을 내려치면서,
하루 종일 탁주와 핏물에 젖어서. 어느날 은행에 갔더니
모두 날 피하더라고. 옷은 갈아입었어도 피냄새가 베인거지.
그날 밤 작업장에 앉아있는데 소머리들이 모두 내 얼굴로 보이데.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그 애는 술집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나직하게, 나는 왜 이렇게 나쁜 패만 뒤집는 걸까.
그 애가 다단계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만나지마. 국민학교때 친구 하나가 전화를 해주었다.
그 애 연락을 받고,
나는 옥장판이나 정수기라면 하나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취직하고 집에 내놓은 것도 없으니 이 참에 생색도 내고.
그 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면 가끔 만나서 술을 마셨다.
추운 겨울엔 오뎅탕에 정종. 마음이 따뜻해졌다.
부천의 어느 물류창고에 직장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등학교때 정신을 놓아버린 그 애의 누나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홀아비에게 재취로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애가 둘인데 다 착한가봐. 손찌검도 안하는 거 같고.
월급은 적어. 그래도 월급나오면 감자탕 사줄께.
그 애는 물류창고에서 트럭에 치여 죽었다.
27살이었다.
그 애는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 남자였다.
한 번도 말한 적 없었지만
이따금 나는 우리가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손도 잡은 적 없지만 그 애의 작고 마른 몸을 안고
매일 잠이 드는 상상도 했다.
언젠가, 난 왜 이렇게 나쁜 패만 뒤집을까. 그 말 뒤에
그애는 조용히 그러니까 난 소중한 건 아주 귀하게 여길꺼야.
나한텐 그런 게 별로 없으니까. 말했었다.
그러나 내 사랑은 계산이 빠르고 겁이 많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애가 좋았지만 그 애의 불행이 두려웠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살 수도 있었다.
가난하더라도 불행하지는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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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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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개인적으로 '체험전' 이란 이름이 붙은 전시회는 다 안 좋아한다. 가지도 않고. 애들이 아니면 절대 안 갔을 전시회인데 애들 때문 + 공짜 티켓 때문에 갔는데 역시나 ㅋㅋㅋ 매우 허술하고 여러모로 부족했던 전시회. 그래도 몇개가 예상보다 예쁘고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다. 직전에 봤던 쟝쟈크샹페가 돈에 비해 너무 부실해서 공짜였던 이 전시회가 더 괜찮게 기억되는거 같기도 하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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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대보단 조금 부실한 전시였다. 공간도 협소했고, 도슨트도 없었고 그림도 몇 개 없더라. 특히 프랑스어로 된 그림들이라 도슨트가 없으니 이게 무슨 그림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만화인데 설명이 없으니 ㅠ_ㅠ 여러모로 아쉬운 전시였지만 그림이 예뻐서 그나마 괜찮았다. 그래도 11000원이란 가격대를 생각하면 정말 부실하기 그지 없는 전시였다. 차라리 그 돈으로 쟝쟈크샹페의 책을 사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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