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으로 박찬욱의 멜로가 기대되진 않았다. ‘만추’ 같은 멜로 영화가 취향인데 과연 박찬욱이 만추처럼 찍을 수 있을까, 싶었다. 솔직히 불가능할 거 같았다.
그리고 역시나, 영화는 ‘만추’ 같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지독한 멜로다. 그리고 박찬욱은 상당히 노력했고 덕분에 ‘만추’ 는 아니었지만 근래 본 멜로 영화 중에 가장 재밌게 봤다. 무려 두 번이나! 내가 박찬욱 영화를 재관람 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재밌게 본 ‘아가씨’ 도 재관람까지는 안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재관람은 영화의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영화의 장점은 일단 모든 씬이 단 하나도 허투루 쓰인 것 없다는 거다. 어느 영화가 안 그렇겠냐만은 이 영화는 특히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모든 씬이 압축된 zip 파일같다. 모든 씬의 미장센이 좀 심하게 아름답고 보다보면 머리가 핑 돌 정도로 한 씬 한 씬을 공들여 해석해 내야 한다. 그래서 두 번 봤다. 아마도 이 영화의 많은 재관람률은 그 까닭일 것이다. 아무리 집중해서 본다해도 단 한 번 보는 것만으로는 너무나 놓치는 씬이 많아서 이 영화를 괜찮게 봤다면 반드시 재관람 해야 한다. 그래야 박찬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어느정도 쫓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한 정성이 이 영화의 단점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멜로 영화다. 관객들이 감정으로 반응해야 한단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너무나 머리를 쓰게 한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감정적으로 빠져들 새가 없다. 끊임없이 머리로 생각하느라 말 그대로 가슴이 젖을 새가 없다. 그래서 엄청나게 지독한 멜로인데 솔직히 눈물이 안 났다. 머리로는 지독하다고 이해하는데 가슴으로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감독이 너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영화다. 그래서 대단히 완성도가 높은 영화지만 그래서 조금의 허투름도 없이 완벽하게 만든 예술작품을 보는 기분이지만 그래서 아쉽다. 거기에 내 감정이 이입할 부분이 없어서. 내가 감정을 느끼기엔 감독이 쏟아내는 말을 해석하기도 버거워서.
그런 아쉬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두 번이나 봤고 몇년만에 리뷰를 쓴다. 이 영화는 이렇게 적어서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서, 감독의 정성들인 작품 구석구석을 내가 훔쳐본 그 감상을 남겨보려 한다.
일단 제목부터 이 영화는 단지 제목이 아니라 언어유희인 것으로 추정된다. 박해일의 직업에 필수적으로 따라올 수 밖에 없는 사건의 해결과 미해결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언어적 유희에 따른 제목일 것이다. 그러니까 박해일이 ‘헤어질 결심’을 한 순간 탕웨이와 관련된 사건은 ‘해결’ 되었으나 탕웨이가 ‘헤어질 결심’을 함으로써 저지른 사건은 평생 박해일에게 ‘해결’ 못한 사건이 될 것이고 그럼으로 인해서 박해일은 평생동안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한 채 ‘미해결’ 사건 근처를 떠돌아야 한다는, 영화 전체의 내용을 대단히 은유적으로 압축한 제목인 것이다.
영화는 두 파트로 나뉜다. 첫 번째는 박해일 파트고 두 번째는 탕웨이 파트라고 보면 된다.
박해일의 시점으로 따라가는 영화의 전반부는 다소 k드라마 불륜적이다.
형사인 박해일이 연기한 장해준은 겉으로 보기엔 가정적이고 일적으로도 완벽하지만 주말 부부를 하면서 다소 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중년 남성 (불륜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그런) 이다. 여전히 섹스를 할 정도로 다정한 부부이고 아내에게 지극하여 주말 부부 하는 아내가 아쉬워하며 전근을 하라고 할 정도이지만 사실 해준의 삶이 행복해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건조하여 늘 인공눈물을 가지고 다니고 불면증으로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자서 졸음운전을 하기 일쑤며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형사라는 직업, 특히 잠복근무에 집착한다. 엄청나게 그럴싸한 외피를 겉에 두른 채 살지만 내면은 그리 충만하지 않다는 것이 능히 짐작가는 삶이다.
그런 해준에게 절벽에서 떨어진, 자살일지 타살일지 의문인 사망 사건이 배당되고 그 사건 피해자의 아내인 탕웨이가 연기하는 송서래가 나타난다. 해준은 처음엔 아름답기 때문에 어쩌면 용의자일지도 모르는 서래에게 끌린다. 끌리기 때문에 그는 그녀가 범인이 아니길 바라고, 그래서 열심히 조사를 하는 듯 안하는 듯 적당히 양심에 거리끼지는 않을 정도의 범위 내에서만 수사를 하고 사건을 종결시킨다.
평소와 다른 그의 태도에 후배 형사는 강력하게 반항하지만,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해준은 다소 양심에 찔리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준은 사건을 종결시키고 해준과 서래는 서로 마음이 통하여 연인이 된다.
어쩌면 사건을 종결시킨 것은 연인이 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 전부터도 해준은 서래를 용의자일지도 모르는 인물을 대하는 것처럼 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선을 넘지는 않았는데 사건이 종결된 뒤에 해준은 확실히 서래에게 ‘좋아한다’ 고 말한다.
하지만 해준은 아무것도 놓을 생각이 없다. 정말 전형적인 k 드라마의 불륜남으로 그는 여전히 가정적인 와중에 서래와 불륜을 시작하고 서래에게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새로운 어떤 것을 시작하지도 않고, 무언가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그들이 섹스하지 않는 것조차도 어떤 부분에선 좀 가증스러운데 그것은 우린 여러 가지 공통점 때문에 서로에게 끌린 것이지 육체적인 이끌림이 아니다, 라고 하는 그럴싸한 포장이거나 혹은 끝까지 가지 않음으로 해서 마지막 책임에서 발을 빼기 위한 보루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혹은 해준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말하는 자신의 품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섹스에 미쳐서 불륜을 저지르는 그런 잡놈이 아니다, 라는 품위랄까.
여튼 전반부에 다분히 해준의 입장에서 보여지는 둘의 관계는 흔한 중년의 k 불륜이다. 남들 눈엔 다 불륜으로 보이지만 자신들은 특별한 로맨스라고 외치는 그런 드라마에 흔히들 나오는 불륜 말이다.
이 영화가 본격적인 불륜에서 벗어나 진짜 멜로로 나아가게 되는 지점은 파도처럼 자신의 사랑을 서래가 깨닫게 되면서부터, 즉 서래의 사랑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전반부에 주로 해준의 시점이 나오기 때문에 언뜻 언뜻 보이는 서래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녀를 유추할 뿐 정확히 그녀의 심정을 알 수는 없다. 과연 그녀가 진짜로 해준과 같은 감정이었는지, 아니면 단지 남편을 죽인 살인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해준을 이용한 건지 모호하다. 초반엔 아마도 이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래는 기민하게 해준의 호감을 알아차렸고 동시에 해준의 취향과 특성까지 파악한다. 그리고 그 취향과 특성에 맞는 여자가 되기 위해 상처에 향수를 뿌리는 식으로 은근히 자신을 어필한다. 마지막까지도 서래는 아마도 해준을 완벽하게 믿지는 않는다. 그래서 서래는 자신의 범행을 알아챈 뒤 자신을 찾아와 괴로워하는 해준을 위로해주기 이전에 혹시나 해서 녹음부터 시작한다. 끝까지 그의 약점을 쥐고서 어떻게든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허나 정작 자신이 살기 위해 했던 그 녹음 때문에 서래의 인생은 다른 방식으로 덜미가 잡히고 만다.
재밌게도 이 영화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사건을 밝혀내는 수사를 해야 하는 형사라는 직업을 가진 해준은 시종일관 수동적이다. 단지 서래와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부인과의 관계에서도 해준은 그리 자기 주장이 강하거나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가 유일하게 가장 주동적이었던 것은 서래의 사건을 종결시킬 때이다.
그에 반해 서래는 영화 내내 모든 사건에서 능동적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요청을 받아들여 어머니를 죽였고, 어머니와 조부의 유골함을 가지고 밀항선에 올라탔으며 그곳에서 자신의 남편을 만났고 그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의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단히 치밀한 계획으로 그를 살해했고 자신을 조사하는 형사를 은밀히 유혹해 용의선상에서 벗어난다. 거기다 두 번째 남편이 협박하자 그의 죽음을 유도하여 끝내 죽게 만든 뒤 자살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은폐하기까지 한다.
이렇듯 서래는 욕망이 뚜렷하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목적과 의식이 분명한 인물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자신 앞에 떨어지면 그것을 조사하는 해준과 달리 서래는 스스로 사건을 일으키고 그 사건을 수습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죽음까지도 ‘미해결 사건’ 으로 만든다.
정말 엄청나게 대단한 여자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캐릭터를 가진 여자이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서래 시점을 보여주는 후반부부터 단순한 k-불륜을 벗어나 미친 멜로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거다.
서래는 산과 같은 사랑을 꿈꾸던 여자다. 자신이 어떤 몰골로 있든 사랑해주는 흠 잡을 데 없이 깔끔한 남자를 원한다. 그래서 그런 남자일 줄 알고 산을 사랑하는 남편과 결혼하지만 그 남자의 통제아래 억압받고 폭력으로 학대받는다. 그러나 태산과 같은 남편은 심지어 공권력까지 가진 남자여서 도무지 벗어날 방도가 없다. 서래는 남편을 신고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교묘한 계획을 짜서 그를 살해함으로써 그에게서 벗어난다. 그리고 자신에게 관심있는 형사를 이용하여 용의 선상에서도 벗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벗어나자마자 자신이 이용했던 사내가 산과 같은 사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붕괴되었다는 해준의 말이 사랑 고백이었던 것은 서래가 평생 꿈꾸던 사랑이 바로 ‘산’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일생 제 것이 아니지만 제 것과 같은 산을 바랐던 서래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지고 부서지는 것 이상의 사랑은 없다. 그래서 오로지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하던 여자는 남자가 자신 때문에 붕괴되었다는 고백을 듣는 순간 자신의 인생을 뒤흔들 정도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 역시 붕괴시키기 시작한다.
학대 받긴 했지만 깔끔하고 단정해 보이는 사내랑 살았던 것과 달리 해준이 떠난 후 서래는 사기꾼에 범죄자에 가깝던 사내와 결혼한다. 전반부에 나온 서래와 후반부 서래의 첫 등장 씬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커서 순간 내가 보는게 멜로 드라마가 아니라 케이퍼 무비인가, 서래가 사기꾼이기까지 한가 잠깐 고민될 정도였다. 그 정도로 후반부 서래의 삶은 전반부 서래의 삶과 괴리가 크다. 전반부와 달리 후반 부 서래는 전혀 예측되지도, 스스로 통제할 수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내도록 맞기만 했던 명백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모습과 달리 후반부 서래는 대단히 거칠고 어찌보면 저속하기까지 하다. 거기다 지금의 남편은 서래를 있는 그대로 봐주지도 않는 남자다. 첫 번째 남편은 그래도 어쨌거나 서래가 어떤 몰골이든 괜찮다고 해주긴 했는데 이 남자는 서래가 다른 놈 손에 얻어 맞는 것을 방치하면서 그 와중에 서래의 행동을 허용해주지도 않는 남자다.
영화는 이렇듯 후반부 서래와 해준은 서로 헤어진 뒤 완전히 붕괴된 채 사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서래와 해준의 붕괴된 삶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해준은 고통 속에서 침잠된 상태다. 그는 정신과를 찾아가 상담 받을 정도의 불명증에 시달리고 점점 살이 빠지며 그리 깔끔하지도 각 잡힌 채 딱 떨어져 있지도 못하다. 그런데 꾸역꾸역 어떻게 살긴 한다. 부인 곁에서 해준은 어떻게든 살기는 산다. 아마도 서래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런 식으로 계속 살았을 것이다. 뭐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국으로 가지는 않는, 끔찍하게 지루한 삶. 하지만 서래는 다르다. 전반부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사는 와중에 서래는 먼저 해준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해준이 하던 모든 행동을 따라한다. 그를 쫓아다니고 관찰하고 녹음한다.
해준의 삶에서 서래가 우연히 떨어진 사건이었다면 서래는 해준을 다시 만나기 위해 스스로 사건을 일으킨다. 두 번째 남편의 죽음을 유도한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해준을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해준은 처음과 달리 이번엔 확실히 서래를 용의자로 특정한 뒤 사건을 해결하려 애쓴다. 첫 사건과 달리 주변 모두가 말리고 불쌍한 여자라고 하는데도 해준은 서래가 용의자라고 확신하고 증거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너무나 손쉽게 범인은 제가 그 놈을 죽였다고 손을 들고 나오고 이번엔 해준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건은 종결되어 버린다.
문제는 다른데서 터지는데 이전에 서래와 그 남편을 만난 적이 있던 해준의 부인이 살인사건에 의문을 품으면서 해준과 서래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빈틈없는 이 영화는 해준의 와이프 이름조차도 ‘안정안’ 이라고 짓고 그것도 모자라 직업조차도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연구원으로 설정한다. 아무 문제없이 아주 안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주 사소한 실수만으로도 큰 폭발이 일어나는 원자력 발전소처럼 ‘안정’ 하다는 겉모양새에 해준은 기대고 있지만 그들의 삶이 실상은 대단히 위태롭고 불안정하며 언제든 터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역시나 부인은 해준의 문제를 알아채자마자 아무런 미련 없이 그를 떠난다. 그토록 사이가 좋고 완벽한 부부였는데 어쩜 변명할 새도 없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정안은 내도록 영화 속에서 나왔던 그 ‘서주임’을 따라간다. 정안이 늘 말했던 그 서주임이 좀 심하게 잘생긴 이혼남이고, 그를 따라가는 와중에 정안이 한 손엔 남자 정력의 상징인 자라를, 한 손엔 여성 호르몬의 상징인 석류청을 안고 가는 것 역시도 박찬욱의 엄청난 위트이며 대단한 상징이다. 동시에 그 부부가 얼마나 그럴싸한 외피만을 둘러싼 관계였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서래는 모친과 외조부가 자신 가문의 산이지만 지금은 국가에 귀속되었다고 말한 그 호미산에 해준을 데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해준에게 모친과 외조부의 유골을 뿌려 달라고 부탁한다. 해준은 그 서래가 시키는대로 산 끝에 서서 유골을 뿌린다. 어쩌면 첫 번째 남편처럼 자신 역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은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해준과 키스한다. 자신의 산이었지만 이제 자신의 산이 아니 곳에서 자신이 산처럼 생각하여 사랑하는 남자와.
하지만 해준은 그 산에 가서 유골을 뿌림으로 인해서 서래 두 번째 남편 살인사건의 비밀을 눈치채고 만다. 그리고 그가 눈치챘다는 것을 한 발 앞서 알아챈 서래는 평생 그와 헤어지지 않을 결심으로 그의 미결사건이 되기 위해 자살하기로 한다.
일생 서래는 그와 같은 단단하고 변함없는 산을 원했지만 서래는 그 산을 평생 가질 수 없었다. 살아서는 호랑이 꼬리(호미) 조차 가질 수 없는 서래는 결국 사자바위를 껴안고 그곳에서 죽기로 결심한다. 참 재밌는 대구가 아닐 수 없다.
이 영화가 좀 과한 압축파일 같다는 건 이런 부분들 때문이다. 호미산과 사자바위, 헤어질 결섬(해결) 과 미(해)결, 석류와 자라, 산과 바다, 산에 올라가는 건 무서워서 바다 속에 파묻혀 죽는 여자, 등등. 영화는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반어와 대구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해준에게 어쩌면 중년의 사소한 불륜, 정도로 지나갔을 수도 있는 일이 어느 순간 자신의 일상을 붕괴하는 사건이 되어버렸고, 그 삶은 서래의 삶조차 붕괴시켰다. 그 죽음을 통해 서래는 해준과 헤어지게 되지만, 서래의 죽음은 평생 해준에게 미해결 사건이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서래는 해준의 삶 속에서 평생 움직이지 않는, 움직일 수 없는 태산이 된다. 산을 바라던 서래는 스스로 산이 되어버린다. 아마도 해준은 평생동안 서래의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그것을 바라보며 잠도 자지 못하고 서래의 생각만 해야 할 것이다. 보고 싶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어서 결코 보지 않을 수 없는 태산처럼 말이다.
정말 오랜만에 길고 긴 리뷰를 쓸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감독의 공이 많이 들어간 영화였다. 그래서 재밌었고 그래서 아쉬웠다. 아마도 ott로 풀린다면 다시 볼 것이다. 분명 두 번이나 봤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놓친 은유와 상징을 찾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렇게 찾다 찾다 모든 것 다 찾게 되어 어느 순간 머리가 아닌 감정만으로 이 영화를 감상하게 되는 어느 날이 온다면 이 영화를 보다 울 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불사하는 그 깊고도 지독한 사랑이 너무나 서러워서.
"지금 편지를 받았으나 어쩐지 당신이 내게 준 글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 슬픕니다. 당신이 내게 이러한 것을 경험케 하기 벌써 두 번째입니다. 그 한 번이 내 시골 있던 때입니다.
이런 말 하면 웃을지 모르나 그간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나는 다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구까지 합니다.
혹 나는 당신 앞에 지나친 신경질이었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점점 당신이 멀어지고 있단 것을 어느날 나는 확실히 알았었고….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걸음이 말할 수 없이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야말로 모연한 시욋길을 혼자 걸으면서 나는 별 이유도 까닭도 없이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구 해서 죽을 뻔했습니다.
집에 오는 길로 나는 당신에게 긴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어린애 같은, 당신 보면 웃을 편지입니다.
"정히야, 나는 네 앞에서 결코 현명한 벗은 못됐었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웠었다. 내 이제 너와 더불러 즐거웠던 순간을 무덤 속에 가도 잊을 순 없다. 하지만 너는 나처럼 어리석진 않았다. 물론 이러한 너를 나는 나무라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제 네가 따르려는 것 앞에서 네가 복되고 밝기 거울 같기를 빌지도 모른다.
정히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픔을, 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구 한다. 하지만 정히야, 이건 언제라도 좋다. 네가 백발일 때도 좋고 내일이래도 좋다. 만일 네 '마음'이– 흐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 네 별보다도 더 또렷하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날 찾거든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든 너는 부디 내게로 와 다고-.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작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따구니도 좋다. 나는 이후 남은 세월을 정히야 너를 위해 네가 다시 오기 위해 저 夜空(야공)의 별을 바라보듯 잠잠히 살아가련다…."
하는 어리석은 수작이었으나 나는 이것을 당신께 보내지 않았습니다. 당신 앞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히 있을 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나도 당신처럼 약아보려구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 고향은 역시 어리석었던지 내가 글을 쓰겠다면 무척 좋아하던 당신이- 우리 글을 쓰고 서로 즐기고 언제까지나 떠나지 말자고 어린애처럼 속삭이던 기억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언짢게 하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나는 당신을 위해- 아니 당신이 글을 썼으면 좋겠다구 해서 쓰기로 헌 셈이니까요-.
당신이 날 만나고 싶다고 했으니 만나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맘도 무한 흩어져 당신 있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
금년 마지막 날 오후 다섯 시에 ふるさと(후루사토)라는 집에서 맛나기로 합시다.
회답주시기 바랍니다. 李箱
-요즈음의 내마음과 꼭 같은.
김대우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을 한 영화 '정사' 를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한다. 책으로도 소장하고 있고, 일년에 몇 번은 영화를 복습할 정도다. 어떤 대사는 툭치면 자르르 쏟아질 정도로 줄줄 외운다. 십오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좋다. 그리고 여전히 정사의 사랑 이야기는 십오년이 흘렀음에도 우리 사회에서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김대우 감독의 작품은 지금까지 다 영화관에서 봤기 때문에 인간중독 역시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에서 봤다. 그리고 느낀 점은 한 젊은 청년이 이제 나이가 들어버렸구나, 하는 것이었다.
정사와 인간중독은 비슷한 점이 매우 많은 영화다.
나이차이가 나는 남녀/ 불륜/ 상하관계/ 사회적인 관계의 제약 등등 몇개의 코드가 일치한다. 주인공 역시 그러하다. 정사의 서현이 그러했듯 인간중독의 김진평 역시 현실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인생이다. 그저 주어진 삶이기에 살아야 한다니까 겨우 산다. 그렇게 살던 그들 앞에 살아숨쉬는 어린 연인이 나타난다. 그 연인은 사회나 규범에서 자유롭고 매혹적이며 겁이 없다. 일생을 틀 안에서 초조하게 살아온 겁쟁이들은 젊은 연인에게 매료당한다. 어린 연인이 과감한 접근으로 시작되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빠져드는 것은 겁많은 서현과 진평이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처럼 아슬아슬하던 관계는 끝내 모두에게 밝혀지면서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니까 인간중독은 남녀만 바뀐 정사의 2014년도 버전이었다. 다만 달랐던 것은 정사를 쓸 때만 해도 젊은 시절 우인에 더 가까웠던 김대우 감독의 나이와 처지가 2014년엔 김진평의 나이와 상황에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러한 감독의 개인적인 감정이입이 지나치게 반영되어, 정사만큼 매혹적이지도, 과감하지도, 살아숨쉬지도 못하다.
정사에서의 우인은 11살 차이나는 여자친구의 언니를 사랑하면서도 자유로웠다. 그는 당당하게 사랑을 이야기했고, 모든 것을 정리했으며 떠나자고 손 내밀었다. '바보같이 내게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는 여자' 를 온 몸으로 사랑했다. 약혼녀의 언니라는 파격적인 관계, 11살이라는 나이차이 모두 우인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중독의 김진평은 다르다. 고작 부하의 여자를 사랑하면서도 벌벌 떨고, 고작 군대라는 세계를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는 우인처럼 맨 몸으로 떠나질 못하고, 결국 자살시도라는 극단적인 시도를 한다. 김진평이 느끼는 압박감이 '죽어야만 해결' 된다고 생각한 감독의 생각이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젊은시절 김대우는 무려 약혼녀의 언니와 사랑하고 가정을 깨고 떠나는 결말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이들어버린 김대우는 고작 군대라는 사회, 자신이 쥔 그 조금의 것들을 놓치는 것 조차 벌벌 떨며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 놓는 유일한 방법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게 안타까웠다. 그게 뭐라고. 가족은 버려도 권력은 못 버린다는 건가? 너무나 남성적인 시각 아닌가.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중독은 정사에 비하면 아주 약한 막장 코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인간중독에서 너무나 소심하고, 겁을 낸다. 김진평이 그러하니, 당연히 상대역인 종가흔의 캐릭터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이해가지 않는 캐릭터가 바로 종가흔이다.
정사의 우인처럼 종가흔 역시 제도권에서 벗어난 여자다. 그녀는 과감하고 야생적이며 무모하면서 솔직하다. 그런 여자가 대체 왜, 남자의 손을 잡고 떠나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한단 말인가. 왜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결정적인 모든 순간 발을 뺀단 말인가? 캐릭터 상으로 절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우인이 주저하는 서현을 끝까지 몰아붙였던데 비해서 종가흔은 마치 진평을 가지고 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메인다. 대체 왜일까.
종가흔에서 겹쳐보였던 것은 은교였다. 그러니까 나이든 남자가 생각할 수 있는 젊은 여자의 캐릭터란, 고작 그 정도였던 거다. 위험하고, 매혹적이지만 절대 내게 오지 않을 여자, 그래서 다 걸기에는 2% 부족하고 아쉽고, 다 걸면 내가 손해볼 것 같은 여자. 일종의 구미호 혹은 마녀를 보듯이 나이든 남자들은 젊은 여자를 바라본다. 그리고 끝내 그녀들 때문에 파국을 맞으면서 아마 속으로 꿍시렁 거릴 것이다.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이런 코드는 너무 비겁하다. 왜 대체 정사의 '우인' 처럼 매혹적인 젊은 여자를 제대로 그려주는 '나이많은 남자감독' 은 없단 말인가. 너무나 지나친 감정이입이다. 많은 것을 가져서 자신이 쥔 것을 놓치기는 아깝고 유혹에는 넘어가고 싶은 나이많은 남자들의 마지막 자기변명 같은 냄새가 너무 났다. '내가 이래봤자 넌 내게 오지 않을테니까 그냥 우린 이쯤 하는 게 좋아' 이런 거.
정사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입장에서 인간중독은 정말 너무너무 아쉬웠다. 무엇보다 한 반짝반짝 빛났던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명성과 부를 얻으면서 나이가 들어버렸다는 게 너무 느껴져서, 그 나이듦이 작품에 너무나 드러나서 아쉬웠다. 예술가의 감각은 왜 녹슬면 안되는가, 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사랑했던 20대의 우인이 나이들어 30대의 김진평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슬펐다.
덧- 모두가 우려하는 송승헌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소 문어체적인 김대우의 대사는 오히려 송승헌처럼 건조하게 연기하는 게 어울렸다. 아니 이건 상대적으로 감독이 종가흔 캐릭터를 너무 망쳐놔서 김진평이 반사이익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여배우는 과연 종가흔을 이해하면서 연기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적어도 후반부에 하는 종가흔의 대사는 감정을 종잡을 수 없어 붕붕 떠다녔다. 그러니 당연히 연기를 못하는 것 처럼 보였다. 상대적으로 감독이 자신의 감정을 듬뿍 투여한, 송승헌의 연기는 오히려 봐줄만 했다. 캐릭터는 적어도 균형이 잡혔으니 말이다. 오히려 송승헌 연기의 함정은 베드씬이었다. 왜죠? 왜 그 몸으로 안 섹시한거죠? 영화 보는 내내 '관능의 법칙'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저것들 어디다 비비고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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