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에 해당되는 글 3건
- 2014.07.25 이상이 최정희에게 보낸 연서 1
- 2014.05.15 [인간중독] 김진평이 되어버린 우인의 슬픔
- 2014.05.09 [역린] 실패한 다모의 변형 혹은 아류
"지금 편지를 받았으나 어쩐지 당신이 내게 준 글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 슬픕니다. 당신이 내게 이러한 것을 경험케 하기 벌써 두 번째입니다. 그 한 번이 내 시골 있던 때입니다.
이런 말 하면 웃을지 모르나 그간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나는 다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구까지 합니다.
혹 나는 당신 앞에 지나친 신경질이었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점점 당신이 멀어지고 있단 것을 어느날 나는 확실히 알았었고….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걸음이 말할 수 없이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야말로 모연한 시욋길을 혼자 걸으면서 나는 별 이유도 까닭도 없이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구 해서 죽을 뻔했습니다.
집에 오는 길로 나는 당신에게 긴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어린애 같은, 당신 보면 웃을 편지입니다.
"정히야, 나는 네 앞에서 결코 현명한 벗은 못됐었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웠었다. 내 이제 너와 더불러 즐거웠던 순간을 무덤 속에 가도 잊을 순 없다. 하지만 너는 나처럼 어리석진 않았다. 물론 이러한 너를 나는 나무라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제 네가 따르려는 것 앞에서 네가 복되고 밝기 거울 같기를 빌지도 모른다.
정히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픔을, 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구 한다. 하지만 정히야, 이건 언제라도 좋다. 네가 백발일 때도 좋고 내일이래도 좋다. 만일 네 '마음'이– 흐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 네 별보다도 더 또렷하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날 찾거든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든 너는 부디 내게로 와 다고-.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작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따구니도 좋다. 나는 이후 남은 세월을 정히야 너를 위해 네가 다시 오기 위해 저 夜空(야공)의 별을 바라보듯 잠잠히 살아가련다…."
하는 어리석은 수작이었으나 나는 이것을 당신께 보내지 않았습니다. 당신 앞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히 있을 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나도 당신처럼 약아보려구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 고향은 역시 어리석었던지 내가 글을 쓰겠다면 무척 좋아하던 당신이- 우리 글을 쓰고 서로 즐기고 언제까지나 떠나지 말자고 어린애처럼 속삭이던 기억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언짢게 하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나는 당신을 위해- 아니 당신이 글을 썼으면 좋겠다구 해서 쓰기로 헌 셈이니까요-.
당신이 날 만나고 싶다고 했으니 만나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맘도 무한 흩어져 당신 있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
금년 마지막 날 오후 다섯 시에 ふるさと(후루사토)라는 집에서 맛나기로 합시다.
회답주시기 바랍니다. 李箱
-요즈음의 내마음과 꼭 같은.
김대우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을 한 영화 '정사' 를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한다. 책으로도 소장하고 있고, 일년에 몇 번은 영화를 복습할 정도다. 어떤 대사는 툭치면 자르르 쏟아질 정도로 줄줄 외운다. 십오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좋다. 그리고 여전히 정사의 사랑 이야기는 십오년이 흘렀음에도 우리 사회에서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김대우 감독의 작품은 지금까지 다 영화관에서 봤기 때문에 인간중독 역시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에서 봤다. 그리고 느낀 점은 한 젊은 청년이 이제 나이가 들어버렸구나, 하는 것이었다.
정사와 인간중독은 비슷한 점이 매우 많은 영화다.
나이차이가 나는 남녀/ 불륜/ 상하관계/ 사회적인 관계의 제약 등등 몇개의 코드가 일치한다. 주인공 역시 그러하다. 정사의 서현이 그러했듯 인간중독의 김진평 역시 현실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인생이다. 그저 주어진 삶이기에 살아야 한다니까 겨우 산다. 그렇게 살던 그들 앞에 살아숨쉬는 어린 연인이 나타난다. 그 연인은 사회나 규범에서 자유롭고 매혹적이며 겁이 없다. 일생을 틀 안에서 초조하게 살아온 겁쟁이들은 젊은 연인에게 매료당한다. 어린 연인이 과감한 접근으로 시작되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빠져드는 것은 겁많은 서현과 진평이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처럼 아슬아슬하던 관계는 끝내 모두에게 밝혀지면서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니까 인간중독은 남녀만 바뀐 정사의 2014년도 버전이었다. 다만 달랐던 것은 정사를 쓸 때만 해도 젊은 시절 우인에 더 가까웠던 김대우 감독의 나이와 처지가 2014년엔 김진평의 나이와 상황에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러한 감독의 개인적인 감정이입이 지나치게 반영되어, 정사만큼 매혹적이지도, 과감하지도, 살아숨쉬지도 못하다.
정사에서의 우인은 11살 차이나는 여자친구의 언니를 사랑하면서도 자유로웠다. 그는 당당하게 사랑을 이야기했고, 모든 것을 정리했으며 떠나자고 손 내밀었다. '바보같이 내게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는 여자' 를 온 몸으로 사랑했다. 약혼녀의 언니라는 파격적인 관계, 11살이라는 나이차이 모두 우인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중독의 김진평은 다르다. 고작 부하의 여자를 사랑하면서도 벌벌 떨고, 고작 군대라는 세계를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는 우인처럼 맨 몸으로 떠나질 못하고, 결국 자살시도라는 극단적인 시도를 한다. 김진평이 느끼는 압박감이 '죽어야만 해결' 된다고 생각한 감독의 생각이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젊은시절 김대우는 무려 약혼녀의 언니와 사랑하고 가정을 깨고 떠나는 결말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이들어버린 김대우는 고작 군대라는 사회, 자신이 쥔 그 조금의 것들을 놓치는 것 조차 벌벌 떨며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 놓는 유일한 방법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게 안타까웠다. 그게 뭐라고. 가족은 버려도 권력은 못 버린다는 건가? 너무나 남성적인 시각 아닌가.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중독은 정사에 비하면 아주 약한 막장 코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인간중독에서 너무나 소심하고, 겁을 낸다. 김진평이 그러하니, 당연히 상대역인 종가흔의 캐릭터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이해가지 않는 캐릭터가 바로 종가흔이다.
정사의 우인처럼 종가흔 역시 제도권에서 벗어난 여자다. 그녀는 과감하고 야생적이며 무모하면서 솔직하다. 그런 여자가 대체 왜, 남자의 손을 잡고 떠나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한단 말인가. 왜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결정적인 모든 순간 발을 뺀단 말인가? 캐릭터 상으로 절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우인이 주저하는 서현을 끝까지 몰아붙였던데 비해서 종가흔은 마치 진평을 가지고 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메인다. 대체 왜일까.
종가흔에서 겹쳐보였던 것은 은교였다. 그러니까 나이든 남자가 생각할 수 있는 젊은 여자의 캐릭터란, 고작 그 정도였던 거다. 위험하고, 매혹적이지만 절대 내게 오지 않을 여자, 그래서 다 걸기에는 2% 부족하고 아쉽고, 다 걸면 내가 손해볼 것 같은 여자. 일종의 구미호 혹은 마녀를 보듯이 나이든 남자들은 젊은 여자를 바라본다. 그리고 끝내 그녀들 때문에 파국을 맞으면서 아마 속으로 꿍시렁 거릴 것이다.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이런 코드는 너무 비겁하다. 왜 대체 정사의 '우인' 처럼 매혹적인 젊은 여자를 제대로 그려주는 '나이많은 남자감독' 은 없단 말인가. 너무나 지나친 감정이입이다. 많은 것을 가져서 자신이 쥔 것을 놓치기는 아깝고 유혹에는 넘어가고 싶은 나이많은 남자들의 마지막 자기변명 같은 냄새가 너무 났다. '내가 이래봤자 넌 내게 오지 않을테니까 그냥 우린 이쯤 하는 게 좋아' 이런 거.
정사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입장에서 인간중독은 정말 너무너무 아쉬웠다. 무엇보다 한 반짝반짝 빛났던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명성과 부를 얻으면서 나이가 들어버렸다는 게 너무 느껴져서, 그 나이듦이 작품에 너무나 드러나서 아쉬웠다. 예술가의 감각은 왜 녹슬면 안되는가, 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사랑했던 20대의 우인이 나이들어 30대의 김진평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슬펐다.
덧- 모두가 우려하는 송승헌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소 문어체적인 김대우의 대사는 오히려 송승헌처럼 건조하게 연기하는 게 어울렸다. 아니 이건 상대적으로 감독이 종가흔 캐릭터를 너무 망쳐놔서 김진평이 반사이익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여배우는 과연 종가흔을 이해하면서 연기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적어도 후반부에 하는 종가흔의 대사는 감정을 종잡을 수 없어 붕붕 떠다녔다. 그러니 당연히 연기를 못하는 것 처럼 보였다. 상대적으로 감독이 자신의 감정을 듬뿍 투여한, 송승헌의 연기는 오히려 봐줄만 했다. 캐릭터는 적어도 균형이 잡혔으니 말이다. 오히려 송승헌 연기의 함정은 베드씬이었다. 왜죠? 왜 그 몸으로 안 섹시한거죠? 영화 보는 내내 '관능의 법칙'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저것들 어디다 비비고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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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다모는 좋아하는 드라마 중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드라마다. 한국 드라마의 대부분이 초반에 비해서 후반으로 갈수록 스토리나 연출이 부실해지는데, 다모는 처음과 끝이 달라지지 않는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드라마 중 하나이다. 품고 있는 메세지도 좋았고, 로맨스도 아름다웠으며 연출과 스토리 역시 훌륭했다. 개인적으로 단점을 찾기 어려운, 정말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허나 역린은 안타깝게도 그 다모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었다.
기본적으로 역린과 다모는 궤를 같이 하는 작품이다.
1. 사회적 주류가 되지 못함으로 인해서 사회에 불만을 품은 두 남자가 있다. (다모 : 이서진Vs김민준 // 역린 : 정재영Vs조정석)
2. 두 남자는 어떤 계기를 통해서 각자의 입장이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한 명은 사회적 안전망 속에 들어가게 되고 한 명은 여전히 그 밖을 떠돈다.
3.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서든 혹은 자의에 의해서든 비주류에 속한 남자가 주류를 치려 한다.
4. 그리고 주류는 그것이 결코 사회에 이롭지 못하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그와 대립한다.
5. 그 과정에서 둘은 희생된다.
6. 그리고 그들의 피 위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싹이 트게 된다.
다모가 이서진과 김민준의 대립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면, 역린은 정재영과 조정석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니까 역린이 아니라 사실은 살수라고 하는게 더 적합한 제목이며, 주인공이 정조가 아니라 '갑수' 이어야 말이 되는 작품이다. 즉 이 영화는 '죽여야 하는 자' 와 '살려야 하는 자' 의 대립을 통해 그 대상이 되는 '인물' 이 과연 죽어야 하는 인물인지 살려야하는 인물인지 관객들에게 드러내주는데 그 의의가 있다. 그것은 '역모' 라는 사건을 일으키려는 세력과 막으려는 세력을 통해 사회가 궁극적으로 어떤 방향을 통해 나아가야하는지 알려주려했던 다모와 같은 맥락이다. 정조가 왜 살아남아야만 하는 인물인지, 결국 두 살수의 대립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지향점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그것을 잘 보여줬는가? 대답은 '아니오' 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정조가 아니다. 정조가 될 수 없다. 정조는 그저 살리거나 죽여야 하는 누군가의 '대상' 일 뿐이다. 이 영화의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는 명백하게 갑수와 을수이다. 그런데 영화는 정조를 주인공으로 했고, 제목도 '역린' 이라고 지었다. 애초에 이게 잘못된 거였다. 이 영화에서 정조는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조금도 하지 못하는데 정조를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하니 군더더기가 붙고 스토리가 산으로 가는 거다.
정조는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지도 못하고(매번 주변에서 누군가가 알려준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아내지도 못하며 스스로 먼저 움직이는 법이 없다. 말은 주인공이라고 하는데 하는 행동은 어지간한 영화의 민폐 여주인공 급으로 매우 수동적이다. 영화에서 실제적인 문제의 발견은 갑수가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을수이며,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는 항아인 월혜가 준다. 주인공인 정조가 역동적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다못해 혜경궁이나 정순왕후보다도 수동적이다. 왕의 분노를 건드린 이야기라고 하는데 왕의 분노를 건드려서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영화에서는 관객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아비의 복수를 하겠다는 구선복 장군과 마지막에 손을 잡는 모습을 보면, 대체 역린을 건들여서 다친 게 누구인가, 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고작 정순왕후?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정조와 정순왕후의 싸움이란 말인가? 정조에게 정순왕후만 제거 된다면 모든 문제는 사라지는가?
심지어 영화는 정조가 '왜' 살아야만 하는 왕인지 역시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갑수와의 에피소드는 지나치게 동화적이고 감상적이다. 그러한 감상이 정조가 '좋은 왕' 이라는 실질적인 증거가 되진 않는다. 영화는 정조의 '장점' 을 부각하는데 할애하기 보다는 반대파의 비인간적임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정조가 '좋은 사람' 처럼 보이게 한다. 이것은 기만이다. 나쁜 놈만 아니면 좋은 놈이란 말인가? 이건 명제의 기본조건 조차 위반하는 것이다. 헌데 영화는 이런 방식으로 정조를 포장한다. 왜 정조가 그 많은 목숨을 없애면서까지 살아야만 하는 왕인가?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다. 영화는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정조' 라는 왕의 이미지에 기댈 뿐이다. 그냥 정조니까, 대중들이 좋아하는 정조니까, 그러니까 살아야 하는 왕일 뿐이다. 실상 영화 속에서 정조가 백성들을 위한 무엇인가를 하는 구체적인 모습은 마지막에 살수인 아이들을 구해주는 것, 그것 하나 뿐이다. 그 하나씩을 하다보면 좋은 세상이 올 거라는 게 정조의 말이다. 그 전에, 그 하나씩을 하기 '이전에' 많은 피 위에 세워진 그가 왜 그러한 정통성을 가지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줘야만 하는데, 영화는 그것을 그냥 넘어간다.
애초에 이 영화의 삼각꼭지는 갑수-을수-월혜여야 했다. 결국 민중들이 어떤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는가, 의 문제로 이야기를 풀었어야 했다. 현빈의 등근육은 훌륭했으나, 그것이 주인공의 자질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정조는 모두가 혹할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이 영화에서 정조는 그저 소비될 뿐 정조라는 캐릭터로서의 역할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우리가 정조를 사랑한 것은 그가 '덜 나쁜놈' 이어서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훌륭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것을 보여주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스피디한 사극액션활극을 만들었어야 했다. 헌데 이 영화는 현재 정치영화도 아니고 액션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죽밥이 되어버렸다.
만약 정말 '역린' 이란 제목에 걸맞게 '정조' 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싶었다면, 차라리 영화 광해처럼 그 정조가 정치인이 되는 과정을 치열하게 보여줘야 했다. 왜 정조가 자신의 철천지 원수인 구선복 장군과 손을 잡는지, 그 잡는 이유는 무엇이며 속내는 무엇이고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관객들에게 납득시켜야 했다. 허나 지금은 정조의 그 선택이 그저 자신의 정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누구든지와 손을 잡을 수 있는 것 처럼 보일 뿐이다. 우린 그런 왕을 원하는 게 아니다. 정조가 '누구나' 와 손 잡을 수 있는 왕이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다. 헌데 영화는 그렇게 보인다.
과연 '역린' 을 건들여서 죽은 자는 누군인가? 희생은 약자들만 당했다. 왕은 자신의 원수라는 장군과는 손을 잡았다. 그리고 끽해서 쫓아낸 것은 정순왕후에 불과하다. 그 뒤의 노론은? 혼인으로 맺어져있다는 그 수많은 권력은? 영화는 벌여놓았던 이야기들에 대한 답은 단 하나도 관객들에게 주지 못했다. 관객들은 정조를 보러 갔는데 정조는 없었고, 실제 스토리는 살수 위주였다. 이러니 지겹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품고있는 메시지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출 역시 훌륭했다. 그런데 너무 욕심을 부렸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감독조차 맥을 잡지 못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왕이 정치꾼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진정한 왕을 그리고 싶은가? 아니면 백성들의 고달픔을 말하고 싶은가? 역린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 단 하나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미완의 작품이다. 무엇보다 나는 정조가 고작 이렇게 소비되는게 너무나 안타깝다. 정조는 정말 매력적인 왕이다. 그런데 왜 영화는 정조의 등근육 외엔 우리에게 정조에 대해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가.
역린, 은 왕의 분노를 건드린 영화가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관객의 분노를 건드린 영화가 된 것 처럼 보인다. 이토록 좋은 재료를 가지고 내놓은 요리가 고작 이것 밖에 안된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진심으로 아깝고, 아까워서 화가 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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